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 238회 그림자 도시 – 1971 광주대단지 사건

8월 27일 방송된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 238회에서는 생존권을 외치며 거리로 나서야 했던 광주대단지 주민들의 비극과 8·10 성남항쟁의 역사를 되짚었다.

광주대단지로 내몰린 철거민

1971년 8월 10일, 경기도 광주 일대에서 수만 명의 주민들이 관공서를 점거하고 차량을 불태우는 전대미문의 소요 사태가 발생했다. 분노한 주민들이 시내버스를 탈취해 청와대로 향하려 했던 소요의 배경에는 박정희 정권의 무리한 도시 정비 사업과 비인간적인 방치가 자리 잡고 있었다.

1966년 미국 존슨 대통령 방한 당시 판자촌 실상이 외신에 생중계되자, 박정희 대통령은 당시 김현옥 서울시장에게 철거를 지시했다. 서울시는 땅을 저렴하게 분양하고 신도시 인프라를 구축해 주겠다는 약속으로 주민들을 광주대단지로 이주시켰다. 그러나 약속했던 신도시는 없었다. 전기와 수도, 도로조차 없는 벌판에 천막만 놓였고 한 천막에 네 가구가 비좁게 생활했다.

괴담이 돌던 죽음의 도시

참혹한 환경은 목숨까지 앗아갔다. 수만 명이 모인 곳에 우물은 고작 몇 개뿐이라 오염된 물을 마신 주민들은 집단 대장염에 시달렸다. 그럼에도 김현옥 시장은 이들을 이주시킨 이유에 대해 “사람들은 원래 10만 명 정도 모아놓으면 자기들끼리 알아서 뜯어먹고 살아가는 법이다”라는 말을 남겨 리스너들을 분노케 했다.

극심한 한파 속 아이들이 동사하고 영양실조 사망자가 속출하자 급기야 “산모가 아기를 삶아 먹었다”는 괴담까지 퍼졌다. 하지만 실상은 극심한 기아 속에 출산한 산모와 갓 태어난 아기가 영양실조로 함께 숨을 거둔 참극이었다. 리스너 윤병희는 “듣는 것만으로 고통스럽고 처참하다”라며 안타까워했고, 이광기는 “삶의 터전이 아니라 죽음의 도시”라며 분노했다.

생존권을 외친 8월 10일

최소한의 생존을 요구했지만 서울시는 묵묵부답이었고 과도한 세금까지 부과되자 주민들은 전 재산을 잃을 위기에 몰렸다. 결국 8월 10일, 대화를 약속한 장소에 서울시장이 나타나지 않자 억눌렸던 민심이 폭발했다. 관용차와 경찰차가 불길에 휩싸였고, 일부 주민들은 버스를 탈취해 청와대로 향했다.

정부는 경찰 기동대를 투입해 진압했다. 주민들은 막대기와 호미를 들고 저항했지만 결국 발길을 돌려야 했다. 정부는 토지 가격 인하를 약속했으나 뒤에서는 주민 구속과 가혹한 고문을 이어갔다. 성남시 승격 이후에도 주민들은 ‘가난한 폭도’라는 낙인이 두려워 출신을 숨겨야 했다.

광주대단지에 남은 잔혹한 그림자

이 모든 비극은 이미 청와대까지 보고된 사실이었으나, 서울시가 무리한 개발에 따른 재정난을 이유로 철거민 예산을 삭감하면서 벌어진 인재였다. 같은 시기 인프라를 갖추고 중산층을 수용한 ‘강남 개발’이 화려한 빛이었다면, 약자들을 외곽으로 내몬 광주대단지는 잔혹한 그림자였다. 리스너 남규리는 “참 불공평하다”라며 씁쓸함을 감추지 못했다.

최초의 대규모 도시 빈민 투쟁으로 재평가받으며 ‘8.10 성남항쟁’이라 불리게 된 이 사건에 대해 이광기는 “생존을 위해 자신들의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사람들의 행위”라고 정의했고, 남규리는 “늦었지만 국민 주권이 보호될 수 있는 역사가 되지 않을까 싶다”라고 소회를 밝혔다.

오늘까지 이어진 주거 약자의 질문

이어 남규리는 “나 또한 옥탑방에서 산 적이 있었다”라고 고백하며 “주거 약자 문제는 아직도 풀지 못한 숙제가 아닐까”라고 되물으며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주거 현실에 대한 화두를 던졌다.

이에 방송이 끝난 후 각종 SNS와 커뮤니티에서는 “왜 사람들이 항쟁을 했는지 이해 간다”, “집이란 살기 편한 장소여야 하는데 주민들을 상대로 농락한건 용납할 수 없네”, “집 없는 설움이 요즘 내 상황 같아서 과몰입해서 봄”, “여전히 불공평한 현실이 씁쓸”, “주거 약자들을 위한 정책이 꾸준히 나오고는 있지만 소외된 사람은 없는지 잘 살펴봤으면 좋겠다”, “꼬꼬무 통해서 성남항쟁 사건을 알게 됐다”, “생존을 위한 최소한의 요구를 처참히 짓밟다니 울화통이 터짐” 등 뜨거운 반응이 이어졌다.

방송 뒤 반응에서도 광주대단지 사건은 과거에 머물지 않고 오늘의 주거 현실을 돌아보게 했다. 생존권을 외쳤던 1971년의 이야기가 지금 우리에게 남긴 질문은 무엇일까?

사진 : SB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