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월 18일에 방송되는 KBS1 ‘인간극장’ 6368회 ‘군자의 시간은 거꾸로 흐른다’ 편에서는 85세 이군자 씨가 늦게 되찾은 배움과 그림으로 매일 성장하는 시간이 공개된다.
겉모습은 백발이 성성한 호호 할머니지만 알고 보면 이군자 씨는 하고 싶은 것을 다 하고 사는 열정 덩어리다. 75세에 검정고시 공부를 시작해 10년 만에 대학교 졸업장을 받았다.
취미로 시작한 수묵화와 색깔이 고와서 배운 민화도 있다. 불교 신자라서 시작한 불화도 있다. 컴퓨터 학원과 텃밭 농사 그리고 친목 모임까지 이어지는 하루 속에서 군자 씨는 동네에서 제일 바쁜 할머니다.
또래 할머니들 중에는 바깥출입이 어렵거나 요양원에 가 있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군자 씨는 젊은 사람 못지않게 에너지가 넘친다. 주변에서 수시로 듣는 말도 “군자 씨 시간은 거꾸로 흐르나 봐”다.
군자 씨가 24시간을 48시간처럼 사는 데에는 아픈 사연이 있다. 8남매의 맏이로 태어난 그는 살림 밑천으로 부모님을 도와 동생들 뒷바라지를 했다. 동생들은 고등학교와 대학교까지 졸업했지만 군자 씨만 초등학교 졸업에 멈췄다.
그로부터 60년 뒤 인생 숙제를 끝낸 군자 씨는 중학교 검정고시를 시작으로 못 배운 한을 풀기 시작했다. 그 정점은 대학교 입학이었다. 좋아하는 그림을 원 없이 그려보고 싶어 대전의 한 대학교 한국화과에 입학했다.
연고도 없는 낯선 도시에서 자취를 하기도 어려웠다. 건강 문제로 매번 밥을 사 먹을 수 있는 형편도 아니었다. 결국 대학교 진학을 포기했느냐 하면 그렇지 않았다. 군자 씨는 용감하게 왕복 7시간 통학을 결정했다.
매일 새벽 3시에 일어나 등교 준비를 했다. 버스와 지하철과 기차를 갈아타며 학교에 다녔다. 입시 미술학원 한 번 다녀본 적 없었지만 특유의 뚝심과 열정으로 그림을 그렸다.
졸업할 때는 우수한 성적으로 ‘총장공로상’까지 받으며 행복한 마무리를 했다. 지도 교수의 말처럼 배움에 대한 군자 씨의 ‘태도가 실력으로’ 쌓인 시간이었다.
배우는 재미에 밤을 새도 힘든 줄 모르고 그렸던 그림은 100여 점에 이른다. 대학도 졸업했으니 화가로서 인생 정리가 필요하다고 생각한 군자 씨는 개인 전시회를 열기로 했다.
전시회를 준비하려면 표구사도 가야 한다. 하루가 다르게 올라오는 곰취도 따야 한다. 늘 다니던 불화도 배우러 가야 한다. 바쁜 일정 속에서 군자 씨가 절로 외치는 말은 “아깝다. 내 시간…”이다.
인생 선배로서 어머니를 존경한다는 자식들은 물심양면으로 어머니를 보필한다. 큰언니이자 큰누나의 노고를 누구보다 잘 아는 동생들도 ‘이군자 개인전’을 위해 힘을 합친다.
살림 밑천 큰딸에서 한복집 아줌마로, 미대 다니는 할머니로, 그리고 한국화가 이군자 여사로 이어진 삶이다. 정말 시간이 거꾸로 흐르기라도 하는 걸까. 매일 성장하고 있는 여든다섯의 청년 이군자 씨를 만난다.
왕복 7시간의 통학 85세 할머니의 학교 가는 길


8남매의 맏딸로 태어난 이군자 씨는 고생하는 부모님을 도와 동생들을 돌보느라 중학교 진학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또래 아이들이 교복 입고 학교 다니는 모습은 너무나 부러웠다. 그래서 군자 씨는 인생의 목표를 평생 공부하는 것으로 정했다.
그로부터 60년 뒤 일흔다섯이 되던 해에 군자 씨는 집 근처 검정고시 공부방의 문을 두드렸다. 3남매를 키워 출가시키고 35년 동안 운영했던 한복집을 정리했다. 남편도 먼저 세상을 떠난 뒤에서야 가슴에 묻어뒀던 꿈을 꺼낼 수 있었다.
그렇게 시작한 공부는 파죽지세에 일사천리였다. 10년 만에 중고등학교는 물론 4년제 대학교까지 졸업했다.
가장 어려웠던 것은 대학 공부였다. 그림이 취미였던 군자 씨는 미대에서 한국화를 배우고 싶었다. 조건을 맞추다 보니 갈 수 있는 곳은 왕복 7시간 거리의 대전에 있는 대학교였다.
잠시 포기할까도 싶었다. 하지만 ‘이런 기회가 두 번 주어지랴’는 마음으로 7시간 통학을 결정했다. 대학생이 되었다는 사실이 너무 설레고 행복해 아픈 것도 몰랐다.
드디어 올 2월 군자 씨는 총장 공로상까지 수상하며 학사모를 썼다. 다른 형제는 고등학교와 대학교를 다 갔는데 큰언니만 초졸이라며 미안해하던 동생들이 있었다. 어머니를 인생의 선배이자 영웅이라 믿는 삼남매의 든든한 조력도 있었다. 그래서 군자 씨에게 대학교 졸업장은 더 감격스럽다.
아깝다 내 시간 하고 싶은 거 다 하고 사는 할머니


하고 싶은 것이 너무 많은 군자 씨는 대학 졸업하자마자 컴퓨터 강좌를 신청했다. 요즘도 인사동으로, 평택 시내로 그림 공부를 다니고 있다.
친구들도 만나야 한다. 좋아하는 텃밭 농사도 포기할 수 없다. 남들은 ‘세월을 거꾸로 사냐’며 부러워하지만 군자 씨는 벌써 여든다섯이다.
체력도 점점 떨어지고 있다. 최근에는 치매가 의심될 만큼 깜빡깜빡 실수하는 일도 잦아졌다. 친구들 중에는 바깥 출입을 힘들어하거나 요양원 신세를 지고 있는 친구도 여럿이다.
그래서 군자 씨는 늘 ‘시간이 아깝다’는 말을 달고 산다. 하루라도 젊은 날 해보고 싶은 것을 다 해보고, 배우고 싶은 것도 배우고 싶기 때문이다.
오늘은 동네 친구들과 아픈 언니네 병문안을 간다. 내일은 사생대회가 열리는 모교로 후배들을 만나러 간다. 밤에는 새로 시작한 한글 타자 연습을 한다. 짬짬이 친구에게 선물할 그림도 그린다.
그렇게 알찬 하루를 마무리하는 시간에 군자 씨가 부르는 인생송이 있다. 제목은 바로 “나는 행복합니다”다. 촌음을 아껴 사는 군자 씨의 행복한 하루가 이어진다.
그림이 날 살렸지 85세의 예술혼


한복집을 운영하며 군자 씨는 틈틈이 수묵화를 배웠다. 어느 날 민화 전시회에 갔다가 고운 색감에 반했다. 그렇게 배우기 시작한 민화 경력은 16년이 됐다.
박물관에 걸린 수월관음도를 보고 불화를 배운 시간도 10년이다. 군자 씨는 평택에서 인사동 불화 교실까지 왕복 4시간 거리를 오가며 평생의 역작인 수월관음도를 완성했다.
그림 한 번 원 없이 그려보겠다고 80이 넘어 미대에 들어갔다. 군자 씨의 그림 사랑은 말로 다 설명하기 어렵다.
군자 씨에게 그림은 가장 소중한 친구이자 힐링의 수단이다. 남편의 병간호를 할 때도, 본인이 암으로 힘들 때도 군자 씨는 그림을 그리며 고통스러운 시간을 이겨냈다.
그림이 아니었으면 벌써 저세상 사람이 되었을 거라며 군자 씨는 스스로 ‘그림에 미친 여자’라고 말한다. 그렇기에 그림을 그려 남들에게 선물하는 것을 기쁨으로 여긴다.
함께 그림을 배우던 친구가 요양원에 입원하게 되자 군자 씨는 성모승천도를 그려 친구를 위로했다. 등록금을 대주며 언니의 공부를 응원한 동생들에게도 각각 그림 선물을 한다.
내가 좋아서 그리고, 좋은 것을 나눠주고 싶어서 또 그린다. 매일 그림을 그리며 예술혼을 불태우다 보니 안방과 작은방은 물론 화장실에까지 그림이 들어차 있다.
가족들은 결국 중대한 결정을 내렸다. 군자 씨의 대학 졸업도 기념할 겸 20여 년 그림 인생을 정리하는 전시회를 열기로 한 것이다. 100여 점이 넘는 그림들이 멋진 미술관에서 손님들을 맞이한다. 과연 사람들은 군자 씨의 불타는 예술혼을 알아볼까.
군자 씨의 시간은 늦게 흐르는 것이 아니라 끝까지 배우는 방향으로 흐르는 것처럼 보인다. 왕복 7시간 통학과 100여 점의 개인전 중 어떤 장면이 더 오래 남을까? 댓글에서는 배움과 그림으로 삶을 다시 쓰는 군자 씨의 시간을 두고 의견이 갈릴 대목이다.
가족의 응원 속에서 85세 이군자 씨가 배움과 그림으로 자신의 시간을 다시 세우는 이야기는 5월 18일 월요일 오전 7시 50분부터 5월 22일 금요일까지 방송되는 KBS1 ‘인간극장’ 6368회~6372회 ‘군자의 시간은 거꾸로 흐른다’ 편에서 공개된다.
출처 : KB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