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 한 바퀴 382회 백령도 1부 평화롭다 서해의 요람

8월 15일에 방송되는 KBS1 ‘동네 한 바퀴’ 382회 ‘여름 섬 기획 2부작 백령도 – 1부. 평화롭다 서해의 요람’ 편에서는 서해 최북단 백령도에서 긴장의 풍경을 일상의 흥과 음식, 청춘과 가족의 삶으로 바꿔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공개된다.

인천항에서 배로 약 4시간을 달려야 닿는 흰 날개의 섬 백령도. 서해 최북단이라는 지리적 위치 때문에 마을 곳곳에는 접경지역의 긴장감이 남아 있지만, 그 안에서 살아가는 주민들의 하루는 바다와 들, 음식과 음악이 어우러진 생활로 이어진다. 나라를 지키기 위해 섬으로 들어오는 젊은 장병들과 인사를 나눈 이만기는 프로그램 역사상 처음으로 백령도에 첫발을 내딛고, 섬을 떠받치는 사람들의 일상을 따라 382번째 여정을 시작한다.

‘연습만이 살 길이다’ 대피소 드럼 동호회

서울보다 평양이 더 가까운 백령도에서는 마을 곳곳의 대피소가 접경지역의 현실을 먼저 보여준다. 두꺼운 철문과 비상시설이 긴장을 떠올리게 하지만, 평소 문을 열고 들어가면 예상과 다른 드럼 소리가 공간을 채운다. 비상시 주민들의 피난처가 되는 시설이 평상시에는 동호회원들의 연습실로 쓰이며 일상의 스트레스를 풀어내는 장소가 된 것이다.

드럼 스틱을 잡은 사람들의 이력도 제각각이다. 70대 백령도 토박이부터 다른 지역에서 시집와 어느새 백령 사람이 된 주민까지 한자리에 모여 박자를 맞춘다. 처음에는 서툴렀던 손놀림도 반복해서 연습하면서 힘을 얻고, 북소리가 커질수록 굳게 닫힌 대피소는 잠시 공연장처럼 달라진다. 비상 상황을 위해 존재하는 공간에서 주민들이 음악을 이어가는 모습은 백령도 사람들이 긴장을 일상 속에서 견디는 한 가지 방식을 보여준다.

대피시설을 평상시 주민 공동공간으로 활용해온 백령도의 생활 방식은 섬이라는 환경과도 맞닿아 있다. 멀리 이동하기 어려운 주민들이 가까운 공간에서 취미를 나누고 서로 안부를 확인하면서 대피소는 단순한 시설을 넘어 사람을 연결하는 장소가 된다. 이만기는 드럼 동호회원들과 함께 박자를 느끼며 긴장의 땅을 흥겨운 무대로 바꿔낸 주민들의 힘찬 인생 연주를 듣는다.

백령도에 등장한 익숙하고도 낯선 맛 ‘까나리 치킨’

차가운 수온 덕에 까나리잡이 배는 늘 만선이라는 백령도 바다는 까나리와 떼려야 뗄 수 없다. 주민들에게 까나리는 ‘덕’에 삶아 숙성한 액젓으로 가장 익숙하고, 섬을 대표하는 특산물 가운데 하나로 오랫동안 식탁을 지켜왔다. 그런 익숙한 재료를 전혀 다른 방식으로 꺼내 든 사람이 백령도 토박이 송진경 씨(47)다.

진경 씨에게 까나리는 어린 시절 포구에서 주워 먹던 고향의 맛이다. 하지만 육지에서 태어난 아이들은 특유의 맛과 향 때문에 까나리를 쉽게 가까이하지 못했다. 고향에서는 너무나 자연스러운 식재료가 다음 세대에게 낯설게 느껴지는 모습을 본 진경 씨는 아이들이 좋아하는 음식 속에 까나리를 넣을 방법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나온 메뉴가 ‘까나리 치킨’이다. 치킨의 튀김옷과 토핑에 까나리를 접목해 익숙한 바삭한 식감 속에 백령도의 맛을 더했다. 전통 식재료를 그대로 먹으라고 권하기보다 아이들이 먼저 손을 뻗는 치킨으로 접근한 셈이다. 까나리액젓으로 대표되던 섬의 식재료가 새로운 간식으로 변하면서 고향의 맛을 이어가는 방식에도 새로운 선택지가 생겼다.

진경 씨는 한 번의 메뉴 개발로 멈추지 않고 까나리를 활용한 새로운 도전을 계속하고 싶어 한다. 오래 먹어온 식재료의 가치를 지키면서도 지금 세대의 입맛에 맞게 다시 풀어내려는 마음이 까나리 치킨 한 조각에 담긴다. 이만기는 익숙한 백령도의 재료와 익숙한 치킨이 만나 만들어낸 낯선 조합을 직접 맛본다.

그리움이 서린 백령도 향토 음식, 짠지떡

백령도의 음식에는 바다 건너 황해도를 떠나온 사람들의 기억도 남아 있다. 한국전쟁 당시 황해도에서 건너온 실향민들이 고향을 떠올리며 만들어 먹기 시작한 짠지떡이 대표적이다. ‘짠지’는 황해도 사투리로 김치를 뜻하고, 김치에 굴이나 홍합을 넣어 속을 채운 백령도식 음식은 낯선 섬에 정착한 사람들의 허기와 그리움을 함께 달래줬다.

먹을 것이 넉넉하지 않던 시절에는 백령도 들녘에서 비교적 쉽게 구할 수 있던 메밀과 찹쌀을 섞어 피를 만들었다. 메밀의 구수함과 찹쌀의 쫀득한 식감이 더해진 피가 떡처럼 느껴져 ‘짠지떡’이라는 이름으로 불렸고, 속에는 김치와 바다에서 얻은 재료가 들어갔다. 육지와 바다가 함께 있는 백령도의 환경이 한 음식 안에 담긴 셈이다.

세월이 흐른 뒤에도 짠지떡은 단순히 옛날에 먹던 음식으로 남지 않았다. 지금도 주민들이 즐겨 찾는 별미로 이어지며 황해도에서 건너온 생활문화가 백령도 안에서 어떻게 뿌리내렸는지를 보여준다. 한입 크기의 음식 안에는 전쟁으로 고향을 떠나야 했던 사람들의 기억과 새 터전에서 다시 살아가야 했던 시간이 함께 배어 있다.

사곶에서 만난 해병대

사곶해수욕장은 백령도를 대표하는 독특한 자연 공간이다. 고운 규암 가루가 오랜 시간 단단하게 다져진 백사장은 약 3km 이어지고, 폭이 넓게 펼쳐진 구간은 비행기가 오갈 수 있을 만큼 단단해 천연비행장으로 알려졌다. 한국전쟁 때부터 최근까지 군사 비행장으로 쓰인 역사를 품은 장소에서 이만기는 지금 서해 최북단을 지키는 해병대원들을 만난다.

넓은 사곶의 풍경 앞에 선 해병대원들은 줄을 맞추고 구호를 외칠 때는 빈틈없는 군기를 보여준다. 하지만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하면 그 안에는 이제 막 10대를 벗어난 청년들의 얼굴이 나타난다. 집에 있는 부모님을 떠올리고, 얼마 전 헤어진 여자친구에게 영상편지를 보내며 애써 웃는 모습에는 군복 뒤에 숨겨진 평범한 청춘의 마음이 묻어난다.

육지에서 멀리 떨어진 섬에서 근무한다는 사실은 가족과 친구를 자주 만나기 어렵다는 뜻이기도 하다. 접경지역의 경계를 지키는 임무와 개인의 그리움을 동시에 안고 생활하는 장병들의 이야기를 들은 이만기도 백여 명의 해병대원들과 함께 힘껏 구호를 외치며 사곶을 뛴다. 천연비행장으로 기억된 넓은 백사장 위에서 오늘의 백령도를 지키는 젊은 사람들의 시간이 겹쳐진다.

백령도 토박이 부녀의 백령도식 냉면

백령도는 바다로 둘러싸인 섬이지만 어업보다 농업에 종사하는 주민이 더 많은 섬이다. 평탄한 들녘에서 자라는 메밀은 오래전부터 섬의 대표적인 작물이었고, 황해도와 가까운 지리적·생활문화적 배경 속에서 냉면도 일찍 자리 잡았다. 전쟁 뒤 황해도 사람들이 백령도에 정착하면서 고향에서 먹던 냉면 문화는 섬의 메밀과 까나리액젓을 만나 백령도만의 방식으로 이어졌다.

냉면을 만드는 과정은 메밀을 정성스럽게 말리고 빻아 면을 뽑는 데서 시작한다. 진하게 우린 사골과 시원한 동치미를 황금 비율로 섞어 육수를 만들고, 완성된 냉면에는 백령도의 대표적인 맛인 까나리액젓을 둘러 감칠맛을 더한다. 메밀의 구수한 맛과 동치미의 시원함, 사골의 깊은 맛에 까나리액젓이 겹치는 것이 백령도식 냉면의 개성이다.

이 냉면을 만드는 사람은 28년간 마을버스 운전대를 잡았던 김창유 씨(64)다. 오랫동안 주민들을 태워 섬길을 달리던 손으로 이제는 메밀면을 말아 한 그릇씩 손님에게 내놓는다. 그의 곁에는 육지 생활을 접고 백령도로 돌아온 딸 김송미 씨(33)가 있다. 고향을 떠나 자신의 생활을 이어가던 딸은 아버지 곁을 지키기 위해 다시 섬으로 돌아왔다.

부녀가 함께 만드는 냉면은 백령도의 음식문화와 한 가족의 선택을 동시에 보여준다. 실향민의 고향 음식에서 시작된 냉면이 토박이 부녀의 손으로 다시 이어지고, 육지에서 돌아온 딸은 아버지와 같은 주방에서 섬의 맛을 지킨다. 이만기는 메밀과 동치미, 사골, 까나리액젓에 부녀의 정성이 더해진 백령도식 냉면 한 그릇을 맛본다.

백령도 최고의 비경, 두무진

섬의 서북쪽으로 향하면 백령도의 자연이 만든 또 다른 얼굴인 두무진이 나타난다. 오랜 세월 파도와 바람의 침식을 견딘 기암괴석들이 바다를 향해 솟아 있고, 바위들이 장군들이 머리를 맞대고 군사 회의를 하는 모습처럼 보인다고 해 ‘두무진’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두무진은 백령도의 대표적인 지질 명소이자 해안 절경으로 꼽힌다. 높은 바위가 병풍처럼 이어지고 그 사이로 바닷길과 산책로가 펼쳐져 있어 가까이 걸을 때와 바다에서 바라볼 때 서로 다른 풍경을 보여준다. 오랜 시간에 걸친 해식 작용이 만든 절벽과 기암의 형태는 사람의 손으로는 만들 수 없는 백령도의 시간을 그대로 드러낸다.

이만기는 웅장한 바위 사이에 난 해안 산책로를 천천히 걸으며 섬의 풍경을 눈에 담는다. 앞서 대피소와 음식, 군인들의 이야기를 따라 사람의 삶을 만났다면 두무진에서는 그 삶을 품고 있는 백령도의 긴 자연사를 마주한다. 접경지역이라는 말보다 먼저 바람과 파도가 만들어낸 거대한 풍경이 시선을 붙잡는다.

거친 바다를 함께 일구는 특별한 동업자, 해녀 장모와 해남 사위

마지막에는 백령도의 거친 바다를 함께 삶의 터전으로 삼은 장모와 사위를 만난다. 제주도에서 원정 물질을 왔다가 백령도의 풍요로운 바다에 마음을 빼앗겨 정착한 김호순 씨(78)는 50년 경력의 베테랑 해녀다. 일흔을 훌쩍 넘긴 지금도 열 길 물속을 훤히 내다보는 감각은 사위에게 든든한 길잡이가 된다.

윤학진 씨(52)는 장모의 부름을 받고 백령도로 달려온 뒤 17년째 같은 바다를 터전 삼고 있다. 깊은 물속으로 들어갈 때 학진 씨가 의지하는 것은 장모가 배 위에서 살피고 당겨주는 공깃줄이다. 바닷속에 들어간 사람이 보이지 않는 순간에도 줄의 움직임과 물의 상태를 살피며 서로의 안전을 확인해야 하기 때문에 두 사람에게 믿음은 말보다 먼저 필요한 작업의 조건이다.

두 사람의 인연은 오래전부터 백령도 바다에서 이어져 왔다. 호순 씨가 물때와 해산물이 있는 자리를 알려주면 학진 씨는 장모의 경험을 따라 바닷속을 누비고, 학진 씨가 깊은 곳에서 작업하는 동안 호순 씨는 공기 공급과 줄의 상태를 지킨다. 장모와 사위라는 가족관계에 스승과 제자, 동업자의 관계까지 포개지면서 두 사람만의 호흡이 만들어졌다.

거친 바다는 어느 한쪽이 혼자 버틸 수 있는 공간이 아니다. 평생 물질로 가족을 지킨 해녀의 경험과 그 경험을 믿고 물속으로 들어가는 사위의 선택이 맞물려야 하루의 일이 끝난다. 서로의 생명줄을 맡길 만큼 깊어진 장서지간의 관계는 백령도 사람들이 자연과 함께 살아가는 방식까지 보여준다.

대피소의 드럼 소리에서 시작해 까나리와 짠지떡, 사곶의 청춘과 메밀냉면, 두무진을 지나 장모와 사위가 서로의 생명줄을 지키는 바다까지 백령도의 평화로운 일상은 사람들의 손으로 이어진다. 접경의 거친 바다에서 17년째 서로를 믿고 물질하는 두 사람의 여름은 어떤 이야기를 더 들려줄까?

거친 바다를 일구며 서로의 울타리가 되어주는 백령도 사람들의 파도보다 깊고 푸른 인생 이야기는 8월 15일 토요일 오후 7시 10분에 방송되는 KBS1 ‘동네 한 바퀴’ 382회 ‘여름 섬 기획 2부작 백령도 – 1부. 평화롭다 서해의 요람’ 편에서 공개된다.

사진 : KB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