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월 24일에 방송되는 tvN ‘벌거벗은 세계사’ 269회에서는 아편전쟁에서 시작된 중국의 뼈아픈 기억이 오늘날 강력한 마약 처벌과 어떻게 이어졌는지 살펴본다.
외국인도 예외 없는 중국의 마약 엄벌
중국은 마약 밀수·판매·운송·제조를 매우 무겁게 처벌하는 나라다. 현행 중국 형법은 아편 1kg 이상이나 헤로인·메스암페타민 50g 이상 등 일정한 중대 마약범죄에 15년형, 무기징역뿐 아니라 사형까지 선고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중국 국적이 아니라고 해서 법 적용에서 빠지는 것도 아니다.
실제로 중국에서는 마약 밀매 혐의로 유죄가 확정된 외국인에게도 사형이 집행된 사례가 이어졌다. 중국 당국은 국적과 관계없이 자국 영토에서 벌어진 중대 마약범죄에 같은 법률을 적용한다는 입장을 밝혀왔다. 이처럼 강경한 태도의 배경을 따라가면 19세기 청나라를 뒤흔든 아편의 기억과 맞닿게 된다.
아편전쟁이 연 백년국치의 기억
18세기 후반부터 영국계 상인들은 인도에서 생산한 아편을 중국에 대량으로 들여보냈다. 차와 비단, 도자기를 사들이느라 중국으로 은이 빠져나가던 영국은 아편 무역으로 흐름을 뒤집었고, 청나라에서는 아편 중독과 은 유출이 심각한 사회·경제 문제로 번졌다.
청나라는 아편을 금지하고 단속을 강화했다. 1839년 임칙서는 광저우에서 외국 상인들이 보유한 대량의 아편을 압수해 폐기했고, 이를 둘러싼 충돌은 제1차 아편전쟁으로 이어졌다. 군사력에서 밀린 청나라는 1842년 패배했고 난징조약을 체결해 홍콩섬을 영국에 넘기고 항구를 개방해야 했다.
굴욕은 한 차례 전쟁으로 끝나지 않았다. 1856년 시작된 제2차 아편전쟁에서도 청나라는 영국과 프랑스에 패했고 더 많은 개항과 외세의 권리 확대를 받아들여야 했다. 중국에서 말하는 ‘백년국치’의 역사 서사는 이 아편전쟁을 출발점으로 삼아 이후 열강의 침탈과 국가적 쇠퇴를 하나의 상처로 기억한다.
마오쩌둥 정권이 벌인 아편 소탕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이 수립된 뒤 새 정부는 아편 문제를 과거 제국주의 침탈과 낡은 사회가 남긴 병폐로 규정했다. 1950년에는 아편 금지를 위한 명령과 마약 관리 규정이 잇따랐고, 1952년에는 더욱 강력한 전국적 단속과 사회 동원이 전개됐다.
단속은 밀매 조직을 처벌하는 데 그치지 않았다. 중독자를 등록하고 치료와 재활을 진행했으며, 양귀비 재배 지역에서는 다른 작물로 전환하는 정책도 추진됐다. 강한 형사 처벌과 대중 동원, 치료를 함께 밀어붙인 결과 1950년대 중국의 아편 소비와 생산은 크게 억제됐다는 평가를 받는다.
아편전쟁으로 시작된 백년국치의 기억은 단순한 과거사가 아니라 현재 중국의 마약 정책을 설명하는 역사적 배경으로 남아 있다. 청나라를 무너뜨린 아편의 기억은 오늘날 중국이 마약 범죄에 사형까지 꺼내 드는 강경함으로 어떻게 이어졌을까?
아편전쟁의 상처가 오늘날 중국의 마약 엄벌주의와 어떻게 연결됐는지는 8월 24일 월요일 오후 10시 10분에 방송되는 tvN ‘벌거벗은 세계사’ 269회에서 공개된다.
사진 : tv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