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무들이 제각각 잎사귀를 털고 한결 가벼워진 몸으로 다가올 추위를 기다리는 계절. 산중에서 노래를 부르며 톱질하는 남자가 있다. 옆에는 사용한 지 20년 된 지게가 보이는데. 옛날이야기 속 흥부처럼 슬근슬근 톱질하는 모습. 그 속에는 능숙함뿐만 아니라 오랜 세월의 애환도 담겨있는 듯하다. 가마솥에 짓는 밥을 고집하고, 오래된 농기구도 모두 가지런히 진열해 둔다. 드넓은 텃밭에 붉은 산수유나무가 자라고, 한쪽에는 부모님을 모신 산소가 있다. 아침마다 야외 목욕탕에서 몸을 씻고 나면 부모님께 인사드리러 간다는데. 남자의 한이 담긴 노랫소리, 산골에 터를 잡은 이유는 가족에 대한 사랑이었던 것일까.
평생 가장으로서, 6남매의 장남으로서 양쪽 어깨가 무거웠던 안후준(74세) 씨. 병으로 어머니를 일찍 여의고 집안 형편은 기울기 시작했다. 집에 쌀이 없어 다른 사람들이 밥 먹는 모습을 보고만 있는 동생들이 그토록 마음 아팠다는데. 그는 학교 갈 나이에 기차에서 신문 배달하고, 중식집에서 일손을 돕는 등 먹고 살기 위해서 발버둥 쳤다. 순전히 부양하며 희생하는 처지였지만 안타깝게도 주위 시선은 곱지 못했다고. 모든 걸 가난 때문에 생긴 문제라고 느낀 그는 돈을 벌기 위해 외국으로 나갔다고 한다. 건설 현장의 일용직으로 간 바레인에서 그는 뜻밖의 제안을 받는다. 인부들에게 밥을 제공해 주는 식당에서 한번 일해보지 않겠냐는 것. 그렇게 설거지부터 전채 요리하는 일을 거쳐 마침내 부주방장까지 올라갔다고. 하지만 아내가 아팠던 탓에 고향 땅으로 돌아와야 했단다. 다시 생계를 위해 식당을 열고 시청에서 청원경찰 일과 상여 소리꾼 일을 병행하며 열심히 돈을 벌었다. 기나긴 한을 품은 탓일까. 유난히 그의 상여소리는 인정을 받았고 결국 무형유산까지 지정되었다는데. 지역 대표로 대통령 표창까지 받은 그를 이젠 고향 사람들이 모두 좋아하고 부러워한단다.
소리와 자연인은 서로 떼려야 뗄 수 없는 사이! 아침마다 산소에 계신 부모님께 인사드리며 한 소절. 산행에서 구한 싸리나무 가지를 자르며 한 소절. 산 더덕과 삼동초를 캐면서 또 한 소절을 부른다. 이렇게 구한 싸리나무 가지는 청소할 때 쓰는 훌륭한 빗자루가 되고. 더덕과 삼동초는 백숙에 넣으면 어느새 추위도 물러갈 보양식으로 완성. 예전 실력을 발휘해 텃밭에서 캔 고구마로 맛있는 짜장밥을 만들기도 하는데. 완성한 밥 위에 새빨간 산수유를 올리는 솜씨가 어쩐지 심상치 않다. 사랑하는 부인과 함께 먹기 위해 달콤한 마음을 듬뿍 담았다고. 힘든 삶의 곡절 속에서도 순정과 가족을 지키며 살아온 자연인의 모습은 2025년 12월 24일 수요일 밤 9시 10분, MBN <나는 자연인이다>에서 공개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