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극장 6430회 영자 씨 나를 잊지 말아요 3부

제주시의 작은 국밥집에서 홍순업 씨(66)의 하루는 새벽부터 시작된다. 순업 씨는 아내 이영자 씨(64)의 손을 잡고 가게 문을 열고, 차 문을 열어주거나 아침을 직접 챙기며 하루를 함께 시작한다. 내장을 손질하고 육수를 끓여 영업 준비를 하는 동안 영자 씨가 식당 한편의 간이침대에서 잠들어 있으면 순업 씨는 일손을 움직이면서도 아내가 어디에 있는지 계속 살핀다.

영자 씨는 4년 전 치매 진단을 받았다. 어리광을 부리다가 금세 토라지기도 하고, 기분이 좋아지면 노래를 부르며 춤을 추기도 한다. 잠깐 시선을 돌린 사이 식당 밖으로 나갈 때도 있어 순업 씨는 일을 하다가도 아내를 찾아 움직여야 하지만, 그런 일상이 반복돼도 아내 곁을 비우지 않는다.

6남매의 막내인 순업 씨에게는 제주에서 함께 지내는 형들이 있다. 첫째 형 홍순갑 씨(75)와 넷째 형 홍순일 씨(68)는 막내 부부 가까이에 터를 잡고 살면서 국밥집 일을 돕고 영자 씨와 산책을 나선다. 형수들도 영자 씨의 목욕을 돕고 옷을 갈아입혀 주며 가족의 돌봄을 나눠 맡는다.

서울의 한 공장에서 만난 순업 씨와 영자 씨는 47년을 부부로 살아왔다. 쌀통이 비어 있던 때도 있었고 순업 씨가 직장을 잃어 방황하던 시기도 있었지만 영자 씨는 남편 곁을 지켰다. 이제 그 세월을 하나씩 잊어가는 아내를 보며 순업 씨는 “내 이름 기억나? 나만은 잊으면 안 돼요”라고 묻는다.

내 아내는 ‘빠삐용’

제주시에서 국밥집을 운영하는 순업 씨에게 아내를 돌보는 일과 장사는 따로 떨어져 있지 않다. 영자 씨가 틈만 나면 가게 밖으로 나가려 하면 “영자 씨, 어디 가요!”라고 부르며 뒤를 따라가고, 다시 아내를 데리고 돌아와 일을 이어간다. 하루에도 몇 차례 이런 상황이 생기지만 순업 씨에게 가장 먼저 확인해야 할 것은 늘 아내가 어디에 있는지다.

두 사람의 시작은 47년 전 서울의 한 공장이었다. 경상도 출신 순업 씨는 제주에서 올라온 영자 씨에게 첫눈에 반했고, 두 사람은 스물과 스물둘의 어린 나이에 부모가 됐다. 이후 영자 씨의 친정이 있는 제주로 내려와 생선 장사와 고물상, 전분 공장, 국밥집까지 가족의 생계를 위해 여러 일을 거쳤다.

20년 넘게 국밥집을 꾸려온 사람도 원래는 영자 씨였다. 그러나 기억이 흐려지면서 순업 씨가 가게를 대신 맡게 됐고, 영업과 돌봄을 동시에 해야 하는 생활이 시작됐다. 가진 것 없는 자신을 만나 오랜 세월 고생한 아내를 생각하면 순업 씨에게 미안함이 남지만, 맛있는 것을 먹으며 웃고 노래와 춤에 신이 난 영자 씨를 지금도 귀엽고 사랑스럽게 바라본다.

둘도 없는 특별한 단짝, 제수씨와 시아주버님

영자 씨가 갑자기 국밥집 밖으로 뛰어나가 한 남자와 하이파이브를 하고 덩실덩실 춤을 추는 날도 있다. 손을 잡고 산책에 나서고 화장실에 들어가면 문 앞에서 기다려주는 사람은 다름 아닌 영자 씨의 시아주버님이다. 막내가 제주에서 홀로 아내를 돌보는 일이 걱정됐던 형들이 가까이 살면서 영자 씨의 일상에도 자연스럽게 들어왔다.

바로 옆집에 사는 첫째 형 순갑 씨는 가게 일을 거들고 매일 영자 씨와 산책하며 노래를 부른다. 요리사 출신인 넷째 형 순일 씨는 형제들을 집으로 불러 텃밭에서 직접 키운 채소로 음식을 만든다.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기분이 좋아진 영자 씨가 시아주버님의 배를 만지며 “사랑해요~”라고 말할 만큼 서로의 거리는 가까워졌다.

형수들도 영자 씨에게 과일을 깎아 먹이고 목욕과 옷 갈아입기를 도우며 곁을 지킨다. 순업 씨 혼자 감당해야 할 시간을 형제와 형수들이 나눠 가지면서 막내인 순업 씨도 잠시 가게 일에 집중하거나 숨을 돌릴 수 있다.

육지에 사는 셋째 형 순종 씨가 제주에 온 날에는 또 다른 만남이 기다린다. 1년 만에 마주하는 셋째 아주버님을 영자 씨가 기억해 낼 수 있을지 가족들도 조심스럽게 지켜본다.

영자 씨, 나를 잊지 말아요

늦은 밤 부부를 찾아온 손님은 아들 성표 씨(44)다. 영자 씨는 아들을 보고 환하게 웃지만 끝내 이름을 바로 떠올리지 못한다. 최근 말수가 줄고 가족의 이름을 기억하지 못하는 순간이 늘어나면서 순업 씨가 마주하는 아내의 변화도 조금씩 커지고 있다.

그럴수록 순업 씨는 아내와 보내는 일상을 더 촘촘히 챙긴다. 뇌에 좋다고 알고 있는 음식과 영양제를 챙겨주고, 저녁이면 식탁에 마주 앉아 한글 공부를 한다. 다른 가족의 이름은 엉뚱하게 적을 때도 있지만 ‘홍순업’ 세 글자를 또박또박 써 내려가면 순업 씨는 눈시울을 붉힌다.

“다른 건 다 잊어도, 홍순업은 잊으면 안 돼요.” 언젠가 아내가 자신까지 기억하지 못할 수 있다는 두려움이 있지만 순업 씨는 그날이 조금이라도 늦게 오기를 바라며 같은 자리를 지킨다.

산책을 좋아하는 영자 씨와 바다로 나간 날에는 모래사장에 두 사람의 이름을 함께 적는다. 파도가 밀려와 글씨를 지우면 부부는 다시 이름을 적으며 해변을 걷는다. 사라지는 글씨를 몇 번이고 다시 쓰는 모습은 기억을 놓치고 싶지 않은 순업 씨의 마음과 겹쳐진다.

3부 줄거리

복날을 맞은 순업 씨 부부는 형제들과 함께 음식을 나눠 먹는다. 첫째 형 순갑 씨와 넷째 형 순일 씨를 비롯해 평소 영자 씨의 돌봄을 함께해 온 가족이 식탁에 모이면 대화는 다시 영자 씨에게로 향한다. 국밥집과 집, 산책길에서 함께 시간을 보내온 가족에게 영자 씨의 하루는 자연스럽게 모두가 공유하는 이야기가 됐다.

이날 영자 씨는 큰언니를 만난다. 오랫동안 각별하게 지내온 언니가 눈앞에 있지만 영자 씨는 언니를 알아보지 못한다. 오래 쌓인 관계까지 기억에서 흐려지는 모습을 마주한 가족들은 영자 씨가 점점 어린아이처럼 변해가는 시간을 다시 실감한다.

그런데 늘 아내와 붙어 지내던 순업 씨가 갑자기 서둘러 공항으로 향한다. 새벽 국밥집 문을 열 때부터 영자 씨의 손을 놓지 않고 지내온 그가 직접 마중을 나갈 만큼 기다리던 사람이 제주에 도착하는 날이다.

복날 가족 식사와 큰언니의 만남 뒤 공항까지 달려간 순업 씨. 늘 영자 씨 곁을 지키던 그가 그토록 서둘러 기다리는 사람은 누구일까?

‘인간극장’ 6430회 ‘영자 씨 나를 잊지 말아요 3부’는 8월 12일 수요일 오전 7시 50분 KBS1에서 방송된다.

사진 : KB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