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월 9일에 방송되는 KBS1 ‘인간극장’ 6450회 ‘그래도 빛날 윤미 3부’에서는 두 눈의 불편함 속에서도 바이올린과 가족을 놓지 않는 김빛날윤미 씨가 아이들의 방학을 맞아 울릉도로 떠나는 이야기가 공개된다.
‘사람을 살리는 연주자’가 삶의 목표인 바이올리니스트 김빛날윤미 씨(34)는 매주 기차역에서 버스킹을 하고 양로원을 찾아 무료 공연을 펼친다. 자신이 가진 연주로 누군가에게 위로를 건네는 일은 윤미 씨가 오래 품어온 삶의 방향이다.
곁에는 파일럿 출신 작가인 남편 오현호 씨(42)가 있다. 사랑스러운 딸과 아들도 함께한다. 연주를 이어가고 가족과 일상을 나누는 나날은 이렇게 행복해도 되나 싶을 정도로 완벽하게 흘러가고 있었다.
그러던 일상에 한 달 반 전 갑작스러운 변화가 찾아왔다. 오른쪽 눈이 퉁퉁 붓고 아프더니 어느 순간 블라인드를 친 것처럼 시야가 흐려졌다. 평소 아무렇지 않게 바라보던 장면이 부분 부분 가려지면서 일상에도 불편이 생겼다.
더 큰 문제는 병원에서도 뚜렷한 원인을 알지 못한다는 점이다. 자가면역 질환일 수도 있고 시신경염일 수도 있으며 종양 가능성도 있다는 설명을 들었다. 앞으로 시력이 다시 돌아올 수 있을지 역시 분명하게 알 수 없는 상태다.
실은 왼쪽 눈에도 20대 초반 비슷한 증세가 생긴 적이 있다. 그 뒤로 왼쪽 시야가 흐린 상태가 이어졌는데 이번에는 오른쪽 눈까지 불편해졌다. 한쪽 눈의 문제가 아니라 두 눈 모두 불편해진 현실이 윤미 씨 앞에 놓였다.
아이들을 생각하면 두려움은 더 커진다. 이러다 사랑하는 딸과 아들의 얼굴을 제대로 보지 못하게 되는 것은 아닐까 하는 걱정이 밀려오면 윤미 씨도 결국 눈물을 쏟는다. 평소 긍정적인 사람에게도 아이들에 대한 마음만큼은 쉽게 넘길 수 없는 두려움이다.
그런 순간에도 윤미 씨는 ‘그래도 손이 아니라 눈이라서 다행이야, 연주는 할 수 있겠네’라며 천진하게 웃는다. 남편도 혀를 내두를 정도로 긍정적인 윤미 씨는 아직 이루고 싶은 꿈이 많아 이 정도 시련에 멈춰 있을 시간이 없다고 마음을 다잡는다.
가족도 윤미 씨가 혼자 버티게 두지 않는다. 딸이 아프다는 소식을 들은 친정어머니는 곧바로 달려와 아이들을 돌보고 살림을 돕는다. 윤미 씨가 치료와 연주에 집중할 수 있도록 생활의 빈자리를 가족이 함께 채운다.
남편 현호 씨도 자신의 일정을 조정해 아내 곁에 붙는다. 강연까지 미루고 병원을 알아보며, 운전이 어려워진 아내를 위해 직접 기사가 된다. 진료와 입원 과정에서도 함께 움직이며 윤미 씨가 혼자 감당해야 할 몫을 줄여준다.
윤미 씨에게 가장 큰 변화는 눈의 불편함이 한 가지 장면에만 머물지 않는다는 데 있다. 악보를 볼 때도, 아이들과 시간을 보낼 때도, 병원으로 이동할 때도 이전과 다른 방식이 필요하다. 그래서 가족의 도움은 치료 일정뿐 아니라 평범했던 일상을 다시 이어가는 과정 전체에 닿아 있다.
연주를 포기하지 않는 마음도 같은 흐름에 있다. 시야가 예전 같지 않아 음표 하나를 확인하는 데 시간이 더 걸리지만, 윤미 씨는 바이올린을 연주할 수 있다는 사실을 먼저 바라본다. 두려움이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할 수 있는 일을 붙잡으며 하루의 중심을 다시 세운다.
어느 날 갑자기 삶에 먹구름이 드리웠지만 윤미 씨에게는 사랑하는 가족과 바이올린, 그리고 아직 남은 꿈이 있다. 시야가 흐려졌다고 해서 삶의 모든 소리가 멈춘 것은 아니다. 인생이라는 아름다운 연주를 계속 이어가는 이유도 바로 거기에 있다. 그래도 빛날 윤미니까!
어느 날 갑자기…

올해 7월 오른쪽 눈에 이상이 생겼다. 눈이 맞은 것처럼 퉁퉁 붓고 아픈 데 이어 눈동자에 블라인드를 쳐놓은 것처럼 부분 부분이 보이지 않았다. 갑작스러운 통증과 시야 변화는 평범했던 하루를 한순간에 바꿔놓았다.
윤미 씨는 일주일 동안 입원해 여러 검사를 받았다. 검사 뒤에는 ‘자가면역 질환’일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를 들었고, 다른 병원에서는 시신경염이나 종양 가능성도 제기됐다. 하지만 어느 쪽도 원인이 확정된 것은 아니었다.
그래서 앞으로 시력이 회복될 수 있을지, 지금보다 얼마나 더 나빠질지도 알 수 없다. 원인을 명확히 알지 못한다는 사실은 앞으로의 일상을 예상하기 어렵게 만든다. 윤미 씨에게는 기다림 자체도 견뎌야 할 시간이 됐다.
게다가 스무 살 무렵에는 왼쪽 눈에도 비슷한 증세가 나타났다. 당시 생긴 불편으로 왼쪽 시야는 여전히 흐린 상태다. 이번에 오른쪽 눈까지 이상이 생기면서 결국 두 눈 모두 편하지 않은 상황이 됐다.
바이올리니스트에게 시야의 불편함은 연주에도 직접 닿는다. 바이올린을 연주하려면 악보를 봐야 하는데, 예전에는 번개처럼 보고 지나가던 음표를 이제는 한 번에 읽기 어렵다. 악보를 보는 평범한 동작에도 이전보다 훨씬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윤미 씨는 고개를 요리조리 돌려가며 보이는 부분을 찾아 한참 동안 음표를 들여다본다. 늘 익숙하게 이어지던 악보 읽기가 달라졌지만 바이올린을 손에서 놓지는 않는다. 보이는 범위 안에서 다시 방법을 찾아 연주를 이어가고 있다.
아이들의 방학에는 큰맘 먹고 울릉도 여행도 떠난다. 가족과 함께 일상에서 잠시 벗어나 아름다운 바다를 보고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고 싶었던 여행이다. 윤미 씨에게도 근심을 조금 내려놓을 수 있기를 바랐던 시간이었다.
하지만 울릉도에 도착하는 날부터 눈에 통증이 찾아온다. 어렵게 떠난 가족 여행인데도 몸 상태가 따라주지 않아 아이들과 마음껏 놀아주기 어렵다. 즐거워야 할 여행 한가운데에서도 눈의 불편함이 계속 따라붙는다.
매사 긍정적으로 버텨온 윤미 씨도 아이들 생각만 하면 마음이 무너진다. 자신의 불편보다 더 무서운 것은 언젠가 아이들의 얼굴을 제대로 볼 수 없게 되는 상황이다. ‘혹시나 우리 아이들 얼굴을 못 보게 되는 건 아닐까’라는 걱정에 결국 눈물이 쏟아진다.
해맑은 아내를 지키는, 열혈 기사


아이들 걱정에 눈물을 흘리다가도 윤미 씨는 다시 긍정의 주문을 꺼낸다. ‘손이 아니고 눈이라서 얼마나 다행이야, 연주는 할 수 있잖아’라고 말하며 자신이 여전히 할 수 있는 일을 먼저 바라본다.
마냥 해맑게 괜찮아질 거라고 믿는 아내를 위해 남편 오현호(42) 씨가 나섰다. 현호 씨는 고등학생 시절 수능 7등급의 피자집 아르바이트생이었다가 뒤늦게 비행기 조종사가 된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스스로 삶의 방향을 바꿔온 경험이 있다.
그는 250킬로미터 사막 마라톤을 해냈고 배낭을 메고 45개국을 누볐다. 쉽지 않은 도전을 여러 번 통과해온 불굴의 사나이는 지금 인생 멘토이자 강연자로 전국을 다닌다. 그러나 아내가 아픈 지금 가장 중요한 역할은 따로 있다.
현호 씨는 아내만을 위한 기사님이 된다. 아내가 어떤 병을 앓고 있는지 밤낮으로 알아보고 병원 예약도 직접 챙긴다. 진료를 받을 때나 입원할 때도 운전대를 잡고 곁을 지키며 이동이 어려워진 아내의 발이 되어준다.
집에서는 두 아이의 아빠로 빈자리를 메운다. 윤미 씨가 집을 비우는 날이면 아이들을 씻기고 재우며 일상을 챙긴다. 병원 동행과 육아를 나눠 맡는 현호 씨의 움직임은 윤미 씨가 자신의 치료와 연주를 함께 이어갈 수 있게 하는 힘이 된다.
아내가 병원에 갈 때는 이동을 돕고 집을 비우면 아이들을 돌보는 식으로 현호 씨의 하루도 아내의 상황에 맞춰 달라졌다. 강연자로 전국을 누비던 사람이지만 지금은 가장 가까운 곳에서 아내가 하지 못하는 일을 하나씩 채운다.
남편이 보기에도 아내가 가장 행복해 보이는 순간은 바이올린을 연주할 때다. 그래서 울릉도에서도 독도에서도 윤미 씨가 연주할 수 있는 무대를 마련한다. 아내가 바이올린을 드는 동안에는 아이들을 돌보며 연주에 집중할 수 있도록 돕는다.
무대가 끝난 뒤에는 ‘오늘 연주가 최고로 감동적이었어’라는 모범적인 감상평도 잊지 않는다. 단순히 이동을 돕는 기사 역할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아내가 가장 좋아하는 연주를 계속할 수 있도록 응원하는 사람이다.
눈이 아프게 된 뒤 처음 맞는 윤미 씨의 생일에도 현호 씨의 마음은 이어진다. 커다란 꽃다발과 손편지를 준비해 아내에게 감동을 안긴다. 갑작스러운 시련으로 달라진 일상 속에서도 두 사람은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며 하루를 건넌다.
시련이 닥쳐도 ‘내 이름은 빛날 윤미!’


김빛날윤미. 처음 이름을 듣는 사람은 당연히 예명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돌아가신 아버지가 직접 지어준 본명이다. 이름에 담긴 뜻은 ‘진실로 아름답게 빛나라’다.
아버지는 딸이 바이올린으로 누군가에게 위로를 주는 사람이 되기를 바랐다. 윤미 씨가 ‘사람을 살리는 연주자’를 삶의 목표로 삼은 배경에도 아버지가 이름과 함께 남긴 뜻이 자리한다.
윤미 씨는 아버지의 바람처럼 요양원이나 장애인시설을 찾아 무료봉사 연주를 이어간다. 매주 기차역에서 버스킹을 하는 것도 자신이 할 수 있는 음악을 사람들과 나누는 방식이다. 바이올린은 직업이면서 다른 사람에게 마음을 전하는 통로다.
눈이 불편해지고 독한 약을 먹으면서 몸 상태도 예전 같지는 않다. 그럼에도 하고 싶은 일과 해야 한다고 생각한 연주를 쉽게 내려놓지 않는다. 그런 딸을 바라보는 친정어머니의 마음은 편할 수 없다.
그래도 하고 싶은 것은 꼭 해야 하는 욕심 많은 딸이라는 것을 어머니는 누구보다 잘 안다. 결국 딸을 말리기보다 곁에서 도와주는 쪽을 택한다. 일곱 살과 다섯 살 손주를 돌보며 윤미 씨가 움직일 수 있는 시간을 만들어준다.
저녁이 되면 어머니는 딸의 손목을 끌고 황토 공원으로 나간다. 모녀는 함께 맨발 걷기를 하며 시간을 보낸다. 아이들을 돌보는 일부터 딸과 걷는 시간까지, 친정어머니 역시 윤미 씨의 하루를 받치는 든든한 지원군이다.
가족이 곁을 지켜주자 잠시 주춤했던 꿈도 다시 꿈틀거린다. 윤미 씨는 아버지가 암투병할 때 인연을 맺었던 사람들을 다시 만나 바이올린 연주를 들려드린다. 아버지와 이어진 인연 앞에서 자신이 가장 잘하는 음악으로 마음을 전한다.
새로운 도전도 시작한다. 작은 영화지만 난생처음 배우로 얼굴을 비추게 되면서 바이올린 밖의 또 다른 경험에도 발을 내딛는다. 눈앞의 시련 때문에 하고 싶은 일을 모두 미루기보다 가능한 꿈을 하나씩 이어간다.
불쑥 찾아온 시련 때문에 말 그대로 눈앞이 캄캄해지는 순간이 있어도 윤미 씨 안에는 쉽게 꺼지지 않는 긍정이 있다. 돌아가신 아버지가 지어준 이름처럼 다시 반짝이기로 마음먹는다. 아무도 꺼트릴 수 없는 빛이 자신의 안에 있다고 믿는다. 그래도 빛날 윤미니까.
3부 줄거리


양쪽 눈이 블라인드를 친 것처럼 잘 보이지 않는 윤미 씨는 불편해진 일상 속에서도 씩씩하게 버텨나간다. 무엇을 바라보는 일도 예전처럼 쉽지 않지만, 가족과 연주를 놓지 않은 채 자신이 할 수 있는 하루를 이어간다.
그런 아내 곁에서는 남편 현호 씨가 빈틈을 채운다. 운전이 어려운 아내의 기사가 되고 병원과 일상을 함께 챙겼던 현호 씨는 여행에서도 윤미 씨가 가족과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곁을 지킨다.
아이들의 방학을 맞아 가족은 큰맘 먹고 울릉도로 떠난다. 눈에 대한 걱정과 병원을 오가던 시간을 잠시 뒤로하고 네 식구가 함께 여행하는 시간을 마련한 것이다. 윤미 씨도 근심을 내려놓고 울릉도의 아름다운 바다를 즐겨본다.
특히 이번 울릉도 여행은 윤미 씨가 환자가 아니라 두 아이의 엄마이자 가족의 한 사람으로 시간을 보내려는 선택이기도 하다. 눈의 통증이 따라오더라도 아이들과 함께 보고 느끼고 싶은 마음까지 멈춘 것은 아니다.
바다를 바라보며 가족과 시간을 보내는 순간만큼은 계속 이어졌던 걱정에서 잠시 벗어나고 싶다. 아이들과 함께 떠난 여행인 만큼 윤미 씨에게도 엄마로서 마음껏 웃고 싶은 시간이다. 가족 역시 그런 윤미 씨와 여행의 순간을 나눈다.
그런데 순탄하게 이어질 것 같던 여행에 뜻밖의 변수가 생긴다. 가족이 캠핑카를 세우려고 했던 자리가 막혀 있는 것이다. 어렵게 울릉도까지 도착했지만 계획했던 자리에 차를 세울 수 없는 상황과 마주한다.
캠핑카를 중심으로 여행을 이어가려던 가족에게는 그냥 지나칠 수 없는 문제다. 윤미 씨가 눈의 불편함을 안고도 큰맘 먹고 떠난 여행인 만큼 예상하지 못한 상황을 어떻게 풀어갈지가 새로운 과제가 된다.
울릉도에서 잠시 근심을 내려놓으려던 가족은 캠핑카 자리부터 뜻밖의 변수를 마주한다. 눈의 불편함 속에서도 여행을 이어가는 윤미 씨와 가족은 막힌 자리를 어떻게 풀어갈까?
캠핑카를 세울 자리가 막힌 울릉도 여행의 다음 이야기는 9월 9일 수요일 오전 7시 50분에 방송되는 KBS1 ‘인간극장’ 6450회 ‘그래도 빛날 윤미 3부’에서 공개된다.
사진 : KB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