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8월 5일 대통령 업무보고에서 이재명 대통령은 오지선다형 객관식 수능의 평가 방식에 근본적인 의문을 던졌다. 정해진 보기에서 하나의 답을 고르는 방식이 지금도 필요한 능력을 제대로 가려내고 있는지 문제를 제기한 것이다.
곧이어 국가교육위원회에서 ‘수능 논·서술형 도입’을 공론화하면서 교육계 안팎이 술렁였다. 바로 다음 달 대입제도 개편안을 발표하겠다고 밝힌 가운데, 수능이 어떤 방향으로 바뀔지 관심이 커지고 있다.
〈PD수첩〉은 수능 개편을 둘러싼 기대와 우려를 차례로 살펴본다. 평가 방식을 바꾸는 데 그치지 않고 새로운 시험을 감당하려면 학교 수업과 교사, 채점 체계가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도 짚어본다.
오지선다 수능, AI 시대에 부딪히다

1993년에 처음으로 치러진 수능은 지식 암기 위주의 학력고사에서 벗어나 종합적인 사고력을 평가한다는 취지로 도입됐다. 당시에는 단순 암기를 넘어 주어진 정보를 이해하고 판단하는 능력을 평가하겠다는 변화였다.
하지만 30여 년이 지난 지금은 얼마나 많은 문제를 풀어봤는지, 문제 풀이 요령을 얼마나 잘 익혔는지를 측정하는 시험으로 전락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시험을 준비하는 방식 역시 문제 유형을 반복해서 익히는 쪽으로 굳어졌다는 것이다.
예상 문제와 풀이법을 공급하는 사교육 시장은 커졌다. 문제를 많이 풀수록 유리하다는 인식 속에 재수와 N수도 흔한 일이 됐고, 실제로 작년에 치러진 수능에서 N수생(검정고시 포함)은 전체 응시자의 32.56%에 달했다.
더 큰 문제는 이런 시험이 AI 시대가 요구하는 역량을 제대로 평가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초중고 12년 동안 정답을 빠르게 골라내는 훈련을 반복해 온 학생들 앞에는 이제 같은 문제를 1초 만에 풀어내는 AI가 놓여 있다.
기계가 정답을 훨씬 빠르게 찾아낼 수 있는 환경에서는 사람이 무엇을 알고 있는지만 확인하는 방식으로 충분한지 다시 묻게 된다. 정답을 고르는 속도와 정확성뿐 아니라 생각을 구성하고 설명하는 능력을 어떻게 평가할지가 새로운 과제로 떠오른다.
그렇다면 AI 시대에 수능은 무엇을 평가해야 할까? 〈PD수첩〉은 시대 변화와 어긋난 채 멈춰 선 오지선다형 객관식 시험의 민낯을 살펴본다. 현재 시험이 실제로 어떤 능력을 재고 있는지도 다시 질문한다.
사교육이 채우는 불안, 공교육이 채워야 할 몫

수능 논·서술형 도입을 앞두고 학부모들의 불안은 커지고 있다. 객관식과 달리 글로 답을 작성해야 한다면 지금까지와 다른 준비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퍼지면서, 대치동에서는 벌써 논술학원을 알아보는 학부모들이 늘고 있었다.
“지금 논술학원 입학시험 신청을 하면 대기 번호 1,000번 정도”라는 하소연이 나왔다. 논·서술형 논의가 제도 확정 전부터 사교육 시장의 움직임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점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논술 과외만 한 달에 50만 원 넘게 든다”는 말도 나왔다. 새로운 시험에 대비하려면 별도의 첨삭과 글쓰기 훈련이 필요하다는 불안이 커지면서 가정의 교육비 부담도 함께 거론되고 있다.
최승해 입시 컨설턴트는 ‘논술은 개별 첨삭이 중요한데, 사교육에서는 이미 이를 중심으로 수업이 이뤄지고 있다’고 말한다. 학생마다 쓴 답안을 직접 보고 고쳐주는 수업이 이미 사교육 현장에서는 상품이 되고 있다는 설명이다.
논·서술형 평가에 대한 학부모들의 불안이 또 다른 사교육 수요와 교육 격차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학교 안에서 충분히 배울 수 없는 평가가 된다면 사교육을 이용할 수 있는 가정과 그렇지 못한 가정의 차이가 더 커질 수 있다.
한편 변화의 시대에 주도적으로 노력하는 공교육 현장도 있었다. 〈PD수첩〉은 새로운 수업 모델을 운영하고 있는 광주의 한 초등학교를 찾아 논·서술형 평가가 요구하는 학습이 학교 안에서는 어떻게 이뤄질 수 있는지 살펴봤다.
학생들은 교사가 제시한 탐구 주제에 맞춰 스스로 자료를 찾고 토론한 뒤 글을 쓴다. 정답을 먼저 알려주는 수업이 아니라 필요한 정보를 찾아 자신의 생각을 만들고, 그 생각을 다른 사람에게 설명하는 과정이 수업 안에서 이어진다.
서로의 글을 평가하는 것도 수업의 일부다. 저학년 때부터 토론과 글쓰기에 익숙해진 아이들은 자기 생각을 정리하고 발표하는 데도 능숙한 모습을 보였다. 평가를 위해 갑자기 글쓰기를 배우는 것이 아니라 수업 과정에서 익히고 있었다.
문제는 이런 수업을 모든 학교에서 가능하게 만들 수 있느냐다. 전문가들은 수업 준비와 개별 피드백, 평가에 필요한 교사의 업무 부담이 커지는 만큼 이를 감당할 교육 여건도 함께 마련돼야 한다고 지적한다.
학생 한 명 한 명의 글을 읽고 의견을 돌려주는 수업은 객관식 문제를 채점하는 방식보다 훨씬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논·서술형 평가를 도입하려면 시험지만 바꾸기보다 이런 수업을 운영할 수 있는 공교육 여건을 먼저 갖춰야 한다는 얘기다.
이런 준비 없이 시험만 바뀐다면 새 제도에 대한 불안은 고스란히 학생과 학부모에게 돌아갈 수 있다. 그 빈틈은 사교육이 먼저 차지할 수 있고, 새로운 평가가 오히려 또 다른 입시 부담을 만드는 결과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
채점 공정성이라는 난제

논·서술형 도입에서 가장 첨예한 쟁점은 채점이다. 정답이 하나로 정해진 객관식과 달리 수십만 명의 답안을 사람이 평가해야 하기 때문이다. 같은 내용을 쓴 답안이라도 채점자에 따라 평가가 달라질 수 있다는 우려가 따라붙는다.
한 교육 유튜버는 “몇십만 명을 사람이 다 채점해야 한다”며 논·서술형 채점 현실화에 의구심을 던졌다. 시험을 치르는 인원이 워낙 많은 만큼 누가 답안을 읽고 어떤 기준으로 점수를 줄 것인지가 제도 설계의 핵심 문제가 된다.
논·서술형 평가를 먼저 도입한 국가들의 경험도 엇갈린다. 중국은 대규모 채점을 위해 교차 채점과 재검증 절차를 수십 년간 운영해 왔다. 한 사람의 판단에만 의존하지 않는 방식으로 대규모 답안을 관리해 온 것이다.
반면 일본은 약 50만 명의 답안을 채점할 전문 인력을 확보하지 못해 서술형 도입을 철회한 바 있다. 시험 문항을 만드는 것보다 수많은 답안을 정해진 기간 안에 안정적으로 평가하는 일이 더 큰 장벽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그렇다면 수십만 명의 답안을 누가, 어떤 기준으로 채점할 것인가? 채점관을 어떻게 양성하고, 채점자에 따른 편차를 어떻게 줄일 것인가? 새로운 수능이 공정성을 인정받으려면 이 질문에 먼저 답해야 한다.
〈PD수첩〉은 국내외 대규모 논·서술형 시험의 채점 시스템을 들여다보며 논·서술형 평가의 공정성을 확보하기 위해 필요한 조건을 짚어본다. 평가 방식의 변화가 실제 학교 교육의 변화로 이어질 수 있을지도 함께 살핀다.
오지선다 수능의 한계를 넘으려면 시험 형식만 바꾸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학교 수업과 사교육 격차, 교사의 업무 부담, 대규모 채점의 공정성을 함께 풀어야 하는 상황에서 우리 교육은 어떤 선택을 할까?
AI 시대 수능이 무엇을 평가해야 하는지와 논·서술형 도입을 위해 준비해야 할 조건은 9월 8일 화요일 오후 10시 20분에 방송되는 MBC ‘PD수첩’ 1522회 ‘AI 시대, 기로에 선 수능’에서 공개된다.
사진 : MBC